1. 12지지가 정해진 배경?
그 탄생배경은 동양의학 이론이 의학이론으로 매치가 되는 주역이 근원이며,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甲乙丙丁戊己庚申壬癸)를 십간(十干) 또는 천간(天干),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를 십이지(十二支), 또는 십이지지(十二地支)라고 하죠.
역학(易學) 발생은 중국 황하 유역으로, 황하는 강이 땅보다 높아 비만오면 홍수가 범람하기 때문에 통치자는 치수(治水 물을
다스림)를 잘해야 성군(聖君)으로 받들었고, 그러기에 통치자가 된자는 성군이 되기 위하여 심신을 청결히하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당년의 길흉을 알려 달라고 천지신명에게 빌게되는 연유가 됩니다.
초기에는 통치자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주관적인 것을 빌었으나 차츰은 누구나 알 수 있도록 객관성이 확보를 위하여 괘(卦)가
그려진 산가지를 뽑아내어 뽑아낸 괘의 내용대로 통치했고, 이를 복서술(점술) 이라 하며 이것이 역학이 생겨나게 된 동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하여 중국 주(周)나라 초기(약 3천5백년전)에 역학은 역경(易經)이라는 서적으로 학문적인 체계도 완성이 되며 이 역경(易經)을 주역(周易)이라 부르며 오늘날에까지 이르게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시대가 흘러 춘추전국 시대에는 공자 같은 성인이 출현하였고, 공자는 "위편삼절(韋編三絶 가죽끈이 세번이나 끊어질 정도로 주역을 읽음)하였다고 하니 공자가 얼마나 주역을 열심히 구했는지를 짐작케하며 결과 공자는 십익(十翼)을 붙여 주역을 완성했다고 전해지고있습니다.
그후 중국 송(宋) 대의 자평 선생이라는 사람이 연해자평이라는 책을 저술함으로써 사주학이 완성을 이루게 되었다고 합니다.
십간은 하늘의 운(運)이요, 십이지를 따의 기(氣)라 하여 이 오운육기(五運六氣)를 조합하여, 60개의 간지를 만들어 내고 이를 음양오행에 준한 의학으로도 적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동양의학 경전이라 불리는 "황제내경"에 망실편이라는 기록만 있지 의학이론으로는 복구되지 않았습니다.
즉, 황제내경은 오랜 세월을 지나오며 전쟁 등에 보관상 수난을 당하였고 특히 중국의 진나라 시황때 모든 서적을 불사르는 분서갱유 사건 시에 이 경전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요.
후세에 다시 구전되어오는 것을 복원하게 되는데, 유독 오운육기에 대한 것이 복원되지 않는 이유인 즉, 오늘날 우리나라의
사상의학처럼 병의 실체를 보려하지 않고 수학적 공식으로 해결하려는 양상, 또는 사주 등의 미신적인 방법으로 이용되기에 복원되지
않은게 아닌가 하는 저의 사견입니다.
천간과 지지는 아래와 같이 음양으로 나누고 오행으로 귀납시키며
천간(天干) 陽 = 甲 丙 戊 庚 壬
陰 = 乙 丁 己 辛 癸
지지(地支) 陽 = 寅 巳 辰戌 申 亥
陰 = 卯 午 丑未 酉 子
木 火 土 金 水
오늘날 사주(四柱)에
태어난 해를 년주(年柱)
태어난 달을 월주(月柱)
태어난 날을 일주(日柱)
태어난 시 시주(時柱)라 합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것은 추후 서적으로 설명하기로 하고 생략하오며.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甲乙丙丁戊己庚申壬癸)의 십간(十干) 또는 천간(天干)의 의미는 첫번째 두번째 가는 순서의 의미, 오운을 음양으로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우선 이해를 하시면 되겠고.
십이지(十二支)는 동물을 상징하는데
자(子)는 쥐, 축(丑)은 소, 인(寅)은 범(호랑이), 묘(卯)는 토끼, 진(辰)은 용, 사(巳)는 뱀, 오(午)는 말, 미)는 양, 신(申)은 원숭이, 유(酉)는 닭, 술(戌)은 개, 해(亥)는 돼지를 의미합니다..
십이지(十二支)를 음양(陰陽)으로 나타내보면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
양음양음양음양음양음양음(陽陰陽陰陽陰陽陰陽陰陽陰)
십이지(十二支)가 나타내는 시간은?
자 (子 쥐) : 밤 11 시 - 새벽 1 시
축 (丑 소) : 새벽 1 시 - 새벽 3 시
인 (寅 범) : 새벽 3 시 - 새벽 5 시
묘 (卯 토끼) : 새벽 5 시 - 아침 7 시
진 (辰 용) : 아침 7 시 - 아침 9 시
사 (巳 뱀) : 아침 9 시 - 오전 11 시
오 (午 말) : 오전 11 시 - 낮 1 시
미 (未 양) : 낮 1 시 - 오후 3 시
신 (申 원숭이) : 오후 3 시 - 오후 5 시
유 (酉 닭) : 오후 5 시 - 저녁 7 시
술 (戌 개) : 저녁 7 시 - 밤 9 시
해 (亥 돼지) : 밤 9 시 - 밤 11 시
* 서양의 시간은 하루를 24시간으로, 동양에서는 자시, 축시, 인시 등 하루를 12시간으로 나눠 본 것입니다.
전설적인 유래는?
중국 삼황시절, 삼황의 하나인 황제헌원이 치우((蚩尤)라는 장군과 자주 싸우게 됩니다.
치우(蚩尤) 장군은 동두철액(銅頭鐵額 구리로 된 머리와 쇠로 된 이마)을 지녔으며, 모래와 쇠가루를 먹고 살았으니 그만큼 강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지요.
치우(蚩尤)는 황제헌원과 싸워서 번번히 이겼으나 황제의 지남차(指南車)의 위력 때문에 패사한 것으로 "이십오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전설적으로는 헌원황제가 하늘에서 내려준 괘에 따른 패전이라고 전합니다.
치우천왕은 중국과 한국을 포함한 동방의 군신(軍神)으로, 그의 무덤에서 연기가 휘날리면 난리가 난다는 전설이 널리 퍼져 있고, 그 연기를 치우의 깃발이라 하며, 우리나라에도 여러 곳에 치우사당이 모셔져 있습니다.
치우천왕(蚩尤天王)에 대한 것을 시간이 계시면 읽어볼 필요가 있다 여겨 퍼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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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보관을 위해 아래에 옮겨 적어둡니다).
① 신시의 말기에 치우천황이 있어 청구를 개척하여 넓혔다.
神 市 之 季 有 治 尤 天 王 恢 拓 靑 邱.
<임승국의 주석, 20쪽>
원
래는 치우(蚩尤)라고 적는다. 이른바 동두철액(銅頭鐵額) 곧 구리로 된 머리와 쇠로 된 이마를 가지고 모래와 쇠가루를 먹고
산다는 이 치우장군은 사실 그의 시대가 철기시대나 동기시대였음을 보여주는 말이다. 저 삼황의 하나인 중국의 황제헌원과 싸워서
번번히 이겼으나 황제의 지남차(指南車)의 위력 때문에 치우는 패사한 것으로 『이십오사』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도
의심스러운 바 있으니, 치우는 황제가 죽은 뒤 80년이나 생존하면서 지금의 티벳(서장)으로 판명된 장당경(藏唐京)에서 왕노릇을
했다는 설도 나오고 있음이다.
치우천왕은 「삼성기 前」 하편의 신시역대기에 의하면 14세 자오지한웅(慈烏支桓雄)을 가리킨다. 사실 치우천왕은 중국과 한국을 포함한 동방의 군신(軍神)이다.
그의 무덤에서 연기 같은 것이 휘날리면 난리가 난다는 전설이 널리 퍼져 있고, 그 연기를 치우의 깃발이라 한다고 하며, 우리나라에도 여러 곳에 치우사당이 모셔져 있다.
한마디로 우리 민족의 강력함을 상징하는 고대 제왕의 이름이다.
앞의 티벳 장당경설은 서경보 스님의 설이다. 중국의 기록을 좀 살펴보면 『이십오사』에는
“古天子之名”이라 하였고 왕동령(王桐齡)이라는 중국 사학자는 “삼묘족(三苗族)의 나라를 구려(九黎 : 고려, Korea의
원음)라 하고 구려의 임금을 치우라 한다”고 그의 『중국민족사』에서 말했다.
② 단군은 하염없이 맨손으로 고요히 앉아서도.... 희(羲)에게는 점치는 일을 관장케 하고, 우(尤)에게는 군대를 관장하게 하였다.
檀 君 端 拱 無 爲 坐 定 . . . 羲 典 卦 筮 尤 作 兵 馬.
『삼성기』前 下, 원동중(『한단고기(桓檀古記)』속에 포함)
① 이로부터 후에 치우천왕이 땅을 개간하고 구리와 쇠를 캐내어 군대를 조련하고 산업을 일으켰다.
自 是 以 後 蚩 尤 天 王 闢 土 地 採 銅 鐵 鍊 兵 興 産
②
또 몇 대를 지나 자오지환웅이 나셨는데, 귀신 같은 용맹이 뛰어났으니 동두철액을 하고 능히 큰 안개를 일으키듯 온 누리를 다스릴
수 있었고, 구야를 만들어 이로써 광석을 캐고 철을 주조하여 병기를 만드니 천하가 모두 크게 그를 두려워하였다.
세상에서는 치우천왕이라 불렀으니 치우란 속된 말로 우뢰와 비가 와서 산과 강을 크게 바꾼다는 뜻을 가진다.
又 數 傳 而 有 慈 烏 支 桓 雄 神 勇 冠 絶 以 銅 頭 鐵 額 能 作 大 霧 造 九 冶 以 採 鑛 鑄 鐵 作 兵 天 下 大 畏 之 世 號 爲 蚩 尤 天 王 蚩 尤 俗 言 雷 雨 大 作 山 河 改 換 之 義 也.
*신시역대기에 의하면 십사세 한웅 치우천왕을 말한다.
③ 치우천왕께서 염제신농의 나라가 쇠함을 보고 마침내 큰 뜻을 세워 여러 차례 천병을 서쪽으로 일으켰다. 또 색도(索度)로부터 병사를 진격시켜 회대(淮岱)의 사이에 웅거하였다.
황제헌원이 일어나자 즉시 탁록( 鹿)의 벌판으로 나아가서 황제헌원을 사로잡아 신하로 삼고, 뒤에 오장군을 보내 서쪽으로 제곡고신을 쳐 공을 세우게 하더라.
蚩 尤 天 王 見 炎 農 之 衰 遂 抱 雄 圖 屢 起 天 兵 於 西 又 自 索 度 進 兵 據 有 淮 岱 之 間 及 軒 候 之 立 也 直 赴 鹿 之 野 擒 軒 轅 而 臣 之 後 遣 吳 將 軍 西 擊 高 辛 有 功.
④ 한때 천하가 셋으로 나뉘어 대치하고 있었으니 탁( )의 북쪽에 대효(大撓)가 있었고 동쪽에 창힐(倉)이 있었으며, 서쪽엔 황제헌원이 있었다.
이들은 서로 군대를 가지고 승리를 차지해 보려고 했으나 아무도 이루지 못하였다.
처음 황제헌원은 치우보다 일어남이 조금 늦더니 싸움마다 이로움이 없자, 대효에 의존코자 했으나 이룰 수 없었고 또 창힐에 의존코자 했으나 그것도 뜻대로 안되었으니 이는 두 나라가 모두 치우의 무리였기 때문이다.
대효는 일찌기 (치우천왕으로부터) 간지의 술을 배웠고, 창힐은 부도의 글을 배웠다.
당시의 제후들이 신하로서 섬기지 않는 자가 없음이 이 때문이다.
時 天 下 鼎 峙 之
北 有 大 撓 東 有 倉 西 有 軒 轅 自 相 以 兵 欲 傳 其 勝 而 未 也 初 軒 轅 稍 後 起 於 蚩 尤 每 戰 不 利 欲
依 大 撓 而 未 得 又 依 倉 而 不 得 二 國 皆 蚩 尤 之 徒 也 大 撓 嘗 學 干 支 之 術 倉 受 符 圖 之 文
當 時 諸 侯 罔 不 臣 事 者 亦 以 此 也.
⑤ 사마천의 『사기』에 말하기를 “제후가 모두 다 와서 복종하여 따랐다.
그때에 치우만이 가장 사나워서 그를 토벌할 수 없었다.
헌원이 섭정할 때 치우형제가 81인이 있었는데, 모두 몸은 짐승의 모습을 하고 사람의 말을
하며, 구리로 된 머리와 쇠로 된 이마를 가지고 모래를 먹으며 오구장도극태노를 만드니 그 위세가 천하에 떨쳐졌다. 치우는 옛
천자의 이름이다” 라고 하였다.
司 馬 遷 史 記 曰 諸 侯 咸 來 賓 從 而 蚩 尤 最 爲 暴 天 下 莫 能 伐 軒 轅
攝 政 蚩 尤 有 兄 弟 八 十 一 人 竝 獸 身 人 語 銅 頭 鐵 額 食 沙 造 五 丘 杖 刀 戟 太 弩 威 振 天 下 蚩 尤
古 天 子 之 號 也.
*오구장은 무기의 이름이고 도극은 칼과 굽은 창, 태노는 활 틀을 놓고 화살·돌을 쏘는 무기이다.
⑥ <신시역대기> 14세는 자오지한웅인데 세상에서는 치우천왕이라 하며 청구국으로 도읍을 옮겨서 재위 109년에 151세까지 사셨다.
十 四 世 曰 慈 烏 支 桓 雄 世 稱 蚩 尤 天 王 徙 都 靑 邱 國 在 位 一 百 九 年 壽 一 百 五 十 一 歲.
* 자오지환웅 : 치우천왕의 왕호이다. 그의 재위가 109년이요 수가 151세라 하나 치우국은 서장에서 800년 계속되었다는 주장이 일붕 서경보 박사의 고증이다.
한편 신시가 치우 때에 청구국 곧 중토의 가장 핵심지 되는 곳으로 옮겼고 저 유명한 황제와의 결전장인 탁록도 하북성이니 이때 신시조선의 웅도가 중토로 웅비한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단군세기』, 행촌 이암(『한단고기(桓檀古記)』속에 포함)
① < 6세 단군 달문 재위 36년> 치우는 청구에 우뚝 서 만고에 무력으로 명성을 떨치었다. 회대지방이 치우에게 돌아오니 천하가 감히 넘보지 못했다.
蚩 尤 起 靑 邱 萬 古 振 武 聲 淮 岱 皆 歸 王 天 下 莫 能 侵.
② <16세 단군 위나 재위 58년> 28년 무술에 아홉 환의 여러 한들을 영고탑에 모이게 하여 사민에게 제사를 지냈는데 천제 한인과 한웅천왕, 치우천왕 및 단군왕검을 배향하였다
戊戌二十八年 會九桓諸汗于寧古塔 祭三神上帝 配桓因桓雄蚩尤及檀君王儉而享之
『태백일사』, 일십당 주인 이맥
<삼신오제본기>
① 서방의 사명을 태금이라 한다. 그의 다스림은 백이니 청정견허라 한다.
그를 보조함은 치우라 하고 구화의 하늘에 있으며 이를 대희리라 한다.
西 方 司 命 曰 太 金 其 帝 曰 白 其 號 曰 淸 淨 堅 虛 其 佐 曰 蚩 尤 在 鉤 和 天 是 爲 大 嘉 利 也
② 환인, 환웅, 치우를 삼황이라하며, 한웅을 대웅의 천이라 하고, 치우를 지위의 천이라 하는데 이는 황제 중경에서 유래된 것이다
桓因與桓雄治尤爲三皇 桓雄稱大雄天 治尤爲智偉天 乃黃帝中經之所由作也
<신시본기>
③ (한웅천왕께서는…)치우는 대대로 병마와 도적을 막는 직책을 맡게 하였다.
이로부터 치우, 고시, 신지의 후예들이 가장 번성하였다. 치우천왕의 등극에 이르러 구야를 만들어
구리와 무쇠를 캐내고 철을 단련하여 칼과 미늘창, 큰 쇠뇌를 제작하여 사냥과 전쟁에 도움이 되자 모두들 신시하게 여겨 먼 외지의
여러 종족들이 큰 활의 위력을 매우 두려워하여 소문만 듣고서도 간담이 서늘해진 지 오래 되었다.
그런 까닭에 저들이 우리 겨레를 일컬어 이라 하였는데 설문에 이른바 이라함은 대와 궁을 합하여 만든 글자로 동방 사람임을 뜻한다 함이 이것이다.
而治尤則世掌兵馬盜賊之職焉 自此治尤高矢神誌之苗裔 繁衍最盛 及至蚩尤天王 登極 造九冶以採銅鐵 鍊鐵以作刀戟大弩以狩獵征戰 賴以爲神遠外諸族 甚畏大弓之 威 聞風膽寒者久矣 故 彼謂我族爲夷 說文所謂夷 從大從弓
④ 유망 때에 이르러 정치를 하면서 급하게 모든 읍의 두 백성들이 제휴하도록 했으나 떠나는 백성들이 많아져서 세상의 도가 매우 어지러워졌다.
우리 치우천왕께서는 신시의 옛 힘을 받스시사 백성과 더불어 세도를 새롭게 하시니, 능히 하늘에
제사지내 삶을 아시고, 땅을 여시사 삶을 도모하시고, 사람을 발탁하시어 삶을 숭상할 수 있으셨다. 온갖 사물의 원리는 빠짐없이
몸소 살펴보시니, 그 덕이 미치지 않는 곳 없었고, 지혜는 뛰어나지 않음이 없었으며, 힘 또한 갖추지 않은 것이 없으셨다.
이에 백성과 더불어 범 무리들을 따로 떼어서 하삭에 살도록 하고는 안으로는 용감한 병사를 기르고 밖으로는 세상의 변화를 관찰하셨다.
유망의 정권이 쇠약하여지니 군대를 보내어 정벌하였다.
집안과 가문에서 장수될 만한 인재 81명을 골라 여러 부대의 대장이 되게 하고, 갈로산의 쇠를
캐내어 도개, 모극, 대궁, 호시를 많이 만들어 한결같이 잘 다듬더니 탁록을 공격하여 함락시켜서 구혼에 올랐다. 연전연승하는 그
위세는 질풍과 같아서 만군을 겹에 질려 굴복케 하고 위세는 천하에 떨치더라. 한 해 동안에 대개 아홉 개 제후의 땅을 점령하고
다시 옹호산에 웅거하여 구야로써 수금과 석금을 개발하여 예과와 옹호의 창을 만들어내고, 다시 군사를 정돈하여 몸소 이들을 이끌고
양수를 건너 출진하더니 재빨리 공상에 이르렀다.
공상은 지금의 진류이며 유망이 도읍했던 곳이다.
이해에 12제후의 나라를 점령하고 죽이니 쓰러진 시체가 들판을 그득 메우게 되었다.
이에 서토의 백성들은 간담이 서늘해 도망쳐 숨지 않는 없었다.
대에 유망은 소호로 하여금 마주 싸우게 하였으나 대왕은 예과와 옹호극을 휘두르며 소호와 크게 싸우고 또 큰 안개를 일으켜 적의 정병으로 하여금 혼미케 하여 스스로 혼란에 빠지게 하였다.
소호는 대패하여 변방으로 도망치더니 공상으로 들어가 유망과 함께 도망쳐 버렸다. 치우천왕은 즉시로 하늘에 제사지내 천하의 태평을 맹세하였다.
다시 군대를 진격시켜 탁록을 에워싸 일거에 이를 멸망시켰다. <관자>가 말하는 바의 "천하의 임금이 전장에서 한번 화를 내자 쓰러진 시체가 들판에 그득했다"는 대목이 이를 말함이다.
及
至楡罔 爲政束急諸邑携二民 多離散世道多艱 我蚩尤天王 承神市之餘烈 與民 更張 能得開天知生 開土理生 開人崇生 衆物原理 盡自檢察
德無不至 慧無不宜 力無 不備 乃與民分治 虎据河朔 內養兵勇 外觀時變 及楡罔衰政 乃興兵出征 選兄弟宗黨 中 可將者八十一人 部領諸軍
發葛盧山之金 大制劍鎧矛戟大弓 矢 一幷齊整 拔 鹿而登九渾 連戰而捷 勢若疾風 伏萬軍 威振天下 一世之中 凡拔九諸侯之地 更就
雍狐之山 以九冶發水金石金 而制芮戈雍狐之戟 更整師躬率 而出陳洋水 殺至空桑 空桑者 今之陳留 楡罔所都也 是世之中 兼倂十二諸侯之國
殺得伏尸滿野 西土之民 莫不喪膽奔 時楡罔使少昊拒戰 天王揮芮戈雍狐之戟 與少昊大戰 又作大霧 使敵將 兵昏迷自亂 少昊大敗 落荒而走
入空桑偕楡罔出奔 蚩尤天王 乃卽祭天而警告天下泰 平 更復進兵 圍迫 鹿 一擧而滅之 管子所謂天下之君頓戰一怒 伏尸滿野者 是也
⑤ 때에 공손헌원이란 자가 있었으니 토착백성들의 우두머리였다.
처음 치우천왕이 공상에 입성해서 크게 새로운 정치를 편다는 말을 듣고 감히 저 혼자 즉위하여
천자가 될 뜻을 갖고 크게 병마를 일으켜 공격해와 더불어 싸우려 했으므로, 치우천왕은 먼저 항복한 장수 소호르 보내 탁록에
쳐덜어가서 에워싸 이를 전멸시켰다.
헌원은 그래도 스스로 굴복치 않고 감히 백번이나 싸워오는지라 치우천왕은 구군에 명을 내려 네
갈래로 나누어 출동케 하고 자신은 보병 기병 3000을 이끌고 곧바로 헌원과 탁록의 유웅이라는 벌판에서 계속해서 싸우면서 명령을
내려 사방에서 압축하여 참살하니, 그 숫자를 셀 수 없었고 세지도 않았다.
또 큰 안개를 일으켜 지척을 분간치 못하게 하면서 싸움을 독려하니 적군은 마침내 마음에 두려움을 일으켜 혼란을 일으키고 도망가 숨으며 달아나니, 백 리 안에 병사와 말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이에 이르러 연의 회대의 땅을 모조리 점령하고자 하여 곧 탁록에 성을 쌓고 회대지방을 점령하였다. 이에 허원의 무리들은 모두 다 신하되기를 원하며 조공을 바쳤다.
대저 당시의 서쪽에 살던 사람들은 함부로 활과 돌의 힘을 믿고 갑옷의 쓸모조차 알지 못했는데, 치우천왕의 법력에 높고 강력함에 부딪쳐 마음에 놀랍고 간담이 서늘하여 싸울 때마다 매양 패했다.
<운급헌원기>라는 책에 '치우가 처음으로 갑옷과 투구를 만들었는데 당시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구리로 된 머리에 쇠로 된 이마라고 치우를 말한다'라고까지 썼으니, 멱시 그 낭패한 모습이 대단했음을 상상해 알 것이다.
時
有公孫軒轅者 土着之魁 始聞蚩尤天王入城空桑大布新政 而敢有自代位天子之 志 乃大興兵馬來與欲戰 天王先遣降將少昊 圍迫 鹿 而滅之
軒轅猶不自屈 敢出百 戰 天王動令九軍分出四道 自將步騎三千 直與軒轅 連戰于 鹿有熊之野 縱兵四蹙斬 殺無算 又作大霧 咫尺難辨而督戰
賊軍乃心慌手亂 奔 逃命 百里 兵馬不相見 於是 冀 淮垈之地 盡爲所據 乃城於 鹿 宅於淮岱 軒轅之屬 皆稱臣入貢 盖當時西土之 人
徒憑矢石之力 不解鎧甲之用 又値蚩尤天王之法力高强 心驚膽寒 每戰輒敗 雲 軒轅記之所謂蚩尤始作鎧甲兜 時人 不知以爲銅頭鐵額者
亦可想見其狼狽之甚矣
⑥ 치우천왕은 더욱더 군대의 힘을 갖추고 사방면으로 진격했던 바 10년 동안 헌원과 싸우기를 73회였으나 장수는 피로의 기색이 없고 군은 물러설 줄 몰랐다.
뒤에 헌원은 열 차례 싸웠으나 매양 졌으므로 원한은 더욱더 커졌다.군대를 일으켜 우리 신시를 본
따 크게 별기와 갑옷을 만들고 또 지나므이 수레도 만들어 감히 싸움터마다 출전하는지라, 치우천왕은 불같이 진노하사 노여움에
부들부들 떠시더니 형제와 종당들로 하여금 싸움의 준비에 힘쓰도록 하면서 위세를 떨쳐서 헌원의 군으로 하여금 감히 공격해 올 뜻을
품지도 못하도록 하였다.
다불어서 한바탕 크게 싸움이 일어나자 한 무리를 마구 죽여 버린 후에야 비로소 멈췄으니 이 싸움에서 우리 쪽 장수 가운데 치우비라 하는 자가 있어 불행하게도 공을 서둘다가 진중에서 죽게 되었다.
<사기>에서 말하는 '치우를 잡아 죽이다'라고 기록한 대목은 아마도 이를 말하느 것인 듯하다.
칭천왕은 크게 화가 나시어 군을 움직여 새로이 돌을 날려 보내는 기계를 만들어 진을 치고 나란히 진격하니 적진은 종내 저항할 발도조차 없었다.
이에 정예를 나누어 파견하여 서쪽은 예탁의 땅을 지키고 동쪽은 회대의 땅을 취하여 성읍을 삼게하고, 헌원의 동쪽 침략의 길을 지키게 하였다.
치우천왕이 돌아가신 지 수천년이 된 지금 오히려 만장의 광열이 있어 능히 후인으로 하여금 흥분하여 떨쳐 일어나게 하는 듯하다.
지금 <한서> 지리지에 의하면 치우천왕의 능은 산동성의 동평군 수장현 관향성 가운데에 있다고 한다. 높이가 7척으로 진나라와 한나라 때 주민들은 10월이면 늘 여기에 제를 지냈다고 한다.
반드시 붉은 기운이 있어 마치 필강 같은 것이 뻗는데 이를 치우의 깃발이라 한다고 한다. 그이 영걸스러운 혼백과 사내다운 기백은 스스로 보통 사람과는 매우 다른 바가 천년의 세월을 지나서도 오히려 없어지지 아니 하는 듯하다.
헌원이 이로써 망연히 사라지니 유망도 이에 따라 영원히 떨어져 버렸다.
蚩尤天王 益整軍容
四面進擊 十年之間 與軒轅戰七十三回 將無疲色 軍不退後 軒 轅 旣屢戰敗 尤益大興士馬 效我神市 而廣造兵甲 又制指南之車 敢出百戰 天王
赫然 震怒 使兄弟宗黨 務要大戰而立威 使軒轅之軍 不敢生意於追襲 與之大戰 混殺一陳 然後 方熄 是役也 我將蚩尤飛者 不幸有急攻 陳沒
史記所謂擒殺蚩尤者 盖謂此也 天 王赫怒動師 新造飛石迫擊之機 成陳聯進 賊陳終 不能抗也 於是 分遣精銳 西守芮 鹿之地 東取淮岱爲城邑
而當軒轅東侵之路 及至崩逝數千載 而猶有萬丈光烈 能起感 於後人者也 今據漢書地理志 其陵 在山東東平郡 壽張縣闕鄕城中 高七丈 秦漢之際
住民 猶常以十月祭之 必有赤氣 出如疋絳 謂之蚩尤旗 其英雄魂魄 自與凡人逈異 曆 數千歲而猶不泯者歟 軒轅 以是索然 楡罔亦從以永墜矣
⑦ 치우천왕의 공덕은 세상에 정하여 능히 떨치고 그윽한 푸르름 속에 그 명성 위엄은 떨어지지 않고 이음이라. 헌원 이래로 세상은 안정되지 못하였으니,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편안하게 베개를 베고 눕지를 못했다.
<사기>에 이르되 "산을 뚫어 길을 내고 한번도 편안히 있은 적 없다. 탁록의 가에
도읍하고 옮겨 다니며 항상 거처를 안정시키지 못하고 장수와 사병을 시켜 지키게 하는 전장에서 살았나니"라고 한 것은 아마도
헌원이 살았을 때 전전긍긍하던 모습을 역력히 보여주는 기록일 것이다. 도 <상서> 여형에서는 "고훈(古訓)에 다만
치우가 난을 일으키다라고만 적은 것은 그의 위엄이 무서워 기(氣)를 빼앗긴 탓"이라고 하였다. 세상에 그의 훈(訓)을 전하는
까닭은 이로써 후인을 위하여 계명으로 삼자는 뜻도 역시 깊다.
그 뒤 300년은 별일이 없었는데 다만 전욱가 한번 싸워 이를 이겼을 뿐이다.
蚩尤天王之餘烈
世襲能振 盡有幽靑 聲威不墜 軒轅以來 世不自安 終其世而未嘗 安枕而臥 史記所謂披山通路 未嘗寧居 邑于 鹿之河 遷徙往來 無常定處
以師兵爲 營衛者 盖其戰兢之意 歷歷可觀 而尙書呂刑 亦云 苦有古訓 惟蚩尤作亂 彼之畏威奪 氣 而世傳其訓 以爲後人戒者 亦甚矣
其後三百年無事 只與 頊一戰破之
⑧ (삼한비기에서 말한다…)또 몇 대 지나 자오지천왕항웅에 이르다. 자오지 한웅은
귀신 같은 용맹이 몹시 뛰어났고, 그 머리와 이마는 구리와 쇠로 되었다. 능히 큰 안개를 일으키고 구야를 만드어 주석과 쇠를
캐내어 무기를 만들고 돌을 날려 목표물을 맞추는 기계를 만들었다.
천하는 이를 두여워하고 함께 떠받들어 천제의 아들 치우라 하더라. 저 치우란 말은 속어로 번개와 비가 크게 내려 산과 강을 바꾸는 것을 뜻한다.
치우천왕은 신농씨가 쇠약해짐을 보고 마침내 뜻을 크게 품고 여러 차례 천병을 서쪽으로 일으켜 진격하여 회대의 사이에 웅거했다.
헌원황제가 즉위함에 이르자 즉시 탁록의 벌판에 나아가 헌원을 사로잡았다.
그리하여 그를 신하로 삼은 다음에 오나라에 장군으로 보내 서쪽으로 고신씨를 공격하여 공을 세우게 하였다.
又
數傳 而至慈烏支桓雄 神勇冠絶 其頭額銅鐵 能作大霧 造九冶以採 鑄鐵作兵 造飛石迫擊之機 天下大畏之 公尊爲天帝子蚩尤 夫蚩尤者
俗言雷雨大作 山河改換之 義也 蚩尤天王 見神農之衰 遂抱雄圖 屢起天兵於西 進據淮岱之間 及軒轅之立也 直 赴 鹿之野 擒軒轅而臣之
後遣吳將軍 西擊高辛 有功
⑨ (진역유기에서 말한다…)천주로서 삼신에 제사하고 병주로서 치우를 제사하니, 삼신은 천지 만물의 조상이고, 치우는 만고의 무신으로서 용강의 조라할지니, 큰 안개를 일으키고 물과 불을 마음대로 사용한다.
도 만세 도술의 조종으로서 바람과 비를 부르고 모든 귀신들을 부른다.
이로써 태시의 세계에서부터 항상 천하 전쟁의 주가 되었다…유방은 동이 계통의 인물이 아니라고 하지만 병사를 풍패에서 일으켰는데 곧 풍패의 풍속은 치우에게 제를 지내므로 나라도 역시 그 풍속을 따라 치우에게 제를 지냈다.
그리하여 혼고하고 깃발을 들고 마침내 10월에 패상에 이르러 제후와 더불어 함양을 평정하고
즉위하여 한왕이 되었던 바 이로 인해 10월을 한 해의 시작으로 정하고 이것이 진나라의 정월 초하루를 빼앗는 일이긴 하나, 역시
동황태일을 받들어 공경하고 치우를 공경하여 제사지낸 때문이라 할 것이다. 뒤에 4년만에 지나라 땅이 이미 평정되닌 축관에게
명하여 치우의 사당을 장안에 세우게 하였다.
그가 치우를 존경하기 이와 같았다.
天主 祠三神 兵主 祠蚩尤 三神 爲天地萬物之祖也 蚩尤
爲萬古武神勇强之祖 作 大霧 驅水火 又爲萬世道術之宗 喚風雨 招萬神 是以 大始之世 恒爲天下戎事之主… 劉邦 雖非夷系 而起兵於豊沛
則風沛之俗 祠蚩尤也 故邦亦因俗以祠蚩尤 而 鼓旗 遂以十月 至 上 與諸侯平咸陽而立爲漢王 則因以十月爲歲首 此雖襲秦正朔 而亦因
崇敬東皇太一 敬祠蚩尤也 後四歲 秦域己定 則令祝官 立蚩尤之祠於長安 其敬蚩尤 之篤 如此
⑩ 진나라의 <천문지>는 "치우기는 고리별 혜성과 비슷하여 뒤가 꼬부라져서 깃발을 닮았다. 깃발이 보이는 곳 바로 밑에 병란이 있다"고 하였으니 이는 치우천왕이 승천하여 별이 되신 때문이다.
또 <통지> 씨족략엔 "치씨는 치우의 후예"라고 했고, 혹은 "창힐은 고신과 더불어
역시 모두 치우씨의 후예이다. 대극성에 태어나 이리저리 옮겨다니다가 산동의 회북으로 옮겨 살았다"고 하였으니, 대저 치우천왕의
영풍위열함이 먼 나라의 깊숙한 곳에 이르기까지 전파되었음을 이로써 미루어 알 수 있다…옛날 여상도 역시 치우의 후손이기 때문에
역시 성은 강이다.
대개 치우천왕이 강수에 살면서 얻은 자식들은 모두 강씨라 하였다.
晉天文志 蚩尤旗
類慧而後曲象旗 所見之方下有兵云 則乃蚩尤天王 上爲列宿也 通志氏族略 蚩氏蚩尤之後 或曰蒼 與高辛 亦盖蚩尤氏之苗裔 生大棘城 而轉徙於山
東淮北者也 盖蚩尤天王之英風雄烈播傳遠域之深 推此可知也…昔呂尙 亦蚩尤氏之後 故亦姓姜 盖蚩尤 居姜水而有子者 皆爲姜氏也
<삼한관경본기 제4>
⑪ 마한세가 상
계속하여 치우씨가 있었는데 구야를 만들어서, 광석을 캐 철을 주조하여 병기를 만들고, 또 돌을 날리는 기계도 만들었다.
이에 천하는 감히 그에게 대적하는 자가 없었다.
때에 헌구가 굴복치 않으니 치우는 몸소 군대를 인솔하고 출동하여 이를 크게 정벌코자하여 크게 탁록에서 싸웠다. 탁록은 지금 산서성의 대동부이다. 싸움이 있기 전에 탁록이 격문을 만들어 81종당의 대인을 소환했다.
먼저 치우의 형상을 그려 분포하더니 목숨을 바칠 것을 맹세하게 하고는 가로대,
"그대
헌구야! 짐으 l고함을 밝히 들으렷다. 해의 아들이라 함은 오직 짐 한 사람뿐으로 만세를 위하고 공동생활의 옳음을 위해 인간의
마음을 닦는 맹세를 짓노라. 그대 헌구여! 우리의 삼신일체의 원리를 모독하고 삼윤구서의 행을 게을리하였으니 삼신은 오래도록 그
더러운 것을 싫어하고 짐 한 사람에게 며아여 삼신의 토벌을 행하도록 하였으니 그대일찌감치 마음을 잡아서 행도을 고칠 것이다.
자성은 너에게서 찾을 것이니 그대의 머리 속에 있음이로다.
만약 명령에 순응치 않는다면 하늘고 사람이 함께 진노하여 그 목숨이 제 목숨이 아닐 것이다.
네 어찌 두렵지 않은가?"라고 했다. 이에 헌구가 평정되어 복종하니 천하는 우리를 기둥처럼 여기더라.
繼
有蚩尤氏 作造九冶以採 鑄鐵作兵 又制飛石迫擊之機 天下 莫敢讐之 時 軒丘 不服 蚩尤 躬率往征之 大戰於 鹿 鹿 今山西大同府也 將戰
作 鹿檄 乃召八十一 宗黨大人 先以頒示蚩尤形像 具命誓而告之 蚩尤天王曰 爾軒丘 明聽朕誥 日之有子 惟朕一人 爲萬世爲公之義
作人間洗心之誓 爾軒丘 侮我三神一體之原理 怠棄三倫九 誓之行 三神 久厭其穢 命朕一人 行三神之討 爾早己洗心改行 自性求子 降在爾腦 若
不順命 天人咸怒 其命之不常 爾無可懼乎哉 於是 軒丘 乃平服 天下 宗我焉
⑫ 번한세가 상
치우천왕은 서쪽으로 탁예를 정벌하고 남쪽으로 회대를 평정하셨다.
산을 뚫고 길을 내시니 땅 넓이는 만리에 이르더라. 단군왕검은 제요도당과 나란히 군림했다…
이에 단군왕검은 치우의 후손 가운데 지모가 뛰어나게 세상에 소문난 자를 골라 번한이라 하고 부(府)를 험독에 세우게 하였다.
지금도 역시 왕검성이라고 한다.
치두남은 치우천왕의 후손으로 지혜와 용기가 뛰어나게 세상에 알려졌다.
단군은 곧 불러 보시더니 이를 기이하게 여기시고는 곧 그를 번한으로 임명하고 겸직하여 우의 정치를 감독케 하였다.
蚩尤天王西征 芮 南平淮岱 披山通道 地廣萬里 至檀君王儉 與唐堯幷世…於是 檀君王儉 擇蚩尤後孫中有智謀勇力者爲番韓 立府險瀆 今亦稱王儉城也 蚩頭男 蚩尤 天王之後也 以勇智著聞於世 檀君乃召見而奇之 卽拜爲番韓 兼帶監虞之政
(김경수 역주본에서 발췌)
2. 12지지에 쥐가 제일 먼저이고 소가 두번째인 이유?
십이지지의 열두 동물 가운데, 동물의 왕이라 불리는 호랑이나 변화무쌍한 용 등이 제일 먼저가 아니고 소가 우두머리가 되었을까?
이에 대한 의문은 누구나 가지기 쉬운데 그에 대한 의문과 이의는 지금만이 아닌 중국의 남송(南宋) 시대부터 제기되고 논란이 되었다고 합니다.
쥐가 십이지지의 우두머리가 된데는 여러 설이 있는데, 음양설(陰陽說), 신기설(神祇說), 시서설(時序說), 쟁선설(爭先說), 근자에 제기된 이십팔숙설(二八宿說) 등의 있습니다.
음양설
십이지 동물의 지닌 발굽과 발의 홀수와 짝수에서 음양과 맞물려 해석하는 방법으로, 이는 양곡만록(暘谷漫錄)이라는 수필에 기록된 것이라 역사적, 학술적 가치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시서설(時序說)
이 설은 남송시대의 주희(朱喜)라는 사람이 제기한 것으로 동시대의 학자 왕응린은 그것은 억지로 끌어다 붙인 것이라고 배척했다고 합니다.
즉, 시서설은 쥐가 제일 먼저 활동한다는 뜻으로, 해당 동물의 활동 시간에 따라 서열을 배열한 것입니다.
쥐는 한밤 중인 자시 쯤에 활동을 개시하고, 소는 축시에 되새김질, 호랑이는 인시에 가장 사나우며, 토끼는 묘시에 활동이 왕성하며, 용은 진시에, 뱀은 사시에는 행인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동양의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한밤중인 자시로 구분하고, 그래서 쥐가 12지의 첫시작이 되었다는 설입니다.
쟁선설(爭先說)
이는 민간 고사로 전해지는 설로서, 황제 헌원(軒轅)이 12동물을 당번으로 배열하는데, 달리기 시합으로 결정을 했다는 설입니다.
이때 소는 쉬지 않고 열심히 달려서 선두의 자리를 지켰는데, 약삭빠른 쥐가 꾀를 짜내어 결승점에 도달하기 직전 소의 뿔 위로 올라가 머리를 앞으로 내밀어 라스트 테잎을 잘 끊어 선두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
신기설(神祇說)
중국의 12지지는 인도의 12지지에 근원을 두는 것으로, 인도의 12지지는 12천신지기(神祇) 아래의 12神獸(신수)입니다.
아파박사(阿婆縛紗), 행림초(行林痹)의 기록에 따르면,
초두라신장(招杜羅 神將)은 쥐를 끌고,
비갈라(毗厘羅) 신장은 소를 끌고,
궁비라(宮毗羅) 신장은 사자를 끌고,
벌석라(伐析羅) 신장은 토끼를 끌고,
미기라(迷企羅) 신장은 용을 끌고,
안저라(安底羅) 신장은 뱀을 끌고.
안미라(安彌羅) 신장은 말을 끌며,
산저라(珊底羅) 신장은 양을 끌고,
인달라(因達羅) 신장은 원숭이를 끌고,
파이라(婆夷羅) 신장은 금시작()을 끌고
마호라(摩虎羅) 신장은 개를 끌고,
진달라(眞達羅) 신장은 돼지를 끎으로, 이에따라 12지지 중에 쥐가 천신지기를 섬김으로서, 쥐가 십이지지 신장의 우두머리가 되었다는 설입니다.
여기서 십이지지의 중요성을 설명 드리렵니다.
음양오행을 근간으로 하는 정통 동양의학 이론은 경맥의 유주시간을 밝히고 있지요.
자축인묘 하는 12지지에 오장육부를 대입하여 그 해당하는 장부가 가장 활동성이 있는 시간을 나타내고 있으니 . . .
위의 여러 설에서 답변인은 의학적 차원에서라면 활동 시간을 근간으로 하는 시서설(時序說)이 타당성을 믿고 있지요.
단순히 십이지지를 동물에만 국한해서 생각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이는 그 동물의 지니는 특성과 땅의 기운의 유주와 그 변화를 관찰한데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폐의 유주시간은 새벽 세시부터 5시 사이인 인시인데, 폐의 질환을 앓으는 환자가 기침 등을 할 때 그 시간이 되면 너나없이 심해지는 것을 볼 때 놀라운 관찰이며 대입이란 것이죠.
이런 이치를 간과히 여기고 천간, 지간을 그저 옛사람들이 만들어낸 미신적, 또는 낡은 방식으로 해석해서는 동양의학 공부 그 시작부터 도루아미 타불이 아닌가 하네요.
잠깐 이해를 도우면?
서양력과 동양력을 볼 때, 늦추위, 늦더위 같은 것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과학적인 것 같은 서양력은 의문을 남겨주는데, 이때 달력을 보고 음력을 드려다보면 여름이 지나간 9월 중순인데도, 음력은 정확히 아직도 여름임을 나타낼때가 아주 많지요.
음력은 1월이 12간지의 출발이 아닌 음력 11월이 출발점이 됩니다.
이유는 11월은 동짓달로서 밤이 제일 길고 낮이 가장 짧은 겨울 한 복판, 방위는 정북(正北)을 가르키며 일년의 출발시점으로 기준을 삼습니다.
경맥의 유주는 우리 인체를 하루에 50바퀴를 도는데, 폐, 대, 위, 비, 심, 소장, 방광, 신, 심, 삼초, 담, 간경의 순으로 돌아가며, 위에 논한 12지지에 맞물려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3. 한의학과 12지지의 관계
아래서 몰아 답변 드리기로 하겠습니다.
4. 12지지를 한의학에 이용하고 있는가?
한의학은 정통 동양의학과는 거리가 먼 이나라의 특수 의학인줄 압니다.
저는 그딴 학문을 모르기에 답변 생략합니다.
출처를 몰라 잠시 퍼다 놨음^^ 곧 삭제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