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불멸의 민중가요 ‘님을 위한 행진곡’ 작곡자 김종률

ⓒ 전라도닷컴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마치 영혼의 밑바닥을 향해 끝도 없이 가라앉는 듯한 민중가요 ‘님을 위한 행진곡.’ 한국 민주주의를 향한 대장정에서 단 하루도 쉬지 않았던 노래요, 광주의 아픔이 시큰시큰한 ‘5월의 노래’다. 강산이 스무 번 쯤 변할 만큼 세월이 흘러 5․18 기념식장에서 대통령도 합창하는 공인된 노래가 되었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산자여 따르라”던 노랫말처럼 남은 사람들의 걸음을 재촉하는 시절로 되돌아와 버렸다.

지 난 해 국가보훈처는 5월의 노래를 새롭게 제작하겠다며 설레발을 치다 격한 반대에 부딪혀 슬그머니 꼬리를 감췄다. 이미 ‘님을 위한 행진곡’은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수많은 국민들의 가슴에 깊게 새겨진 DNA가 되었던 것이다. 그 애절한 가사에 비감이 서린 장중한 곡조를 붙여 넣어 불멸의 민중가요를 내놓은 이가 김종률(52)씨다. 

▲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으로서 또 당시의 아픔을 같이 겪었고 느꼈던 사람으로서, 광주의 노력들, 민주주의를 향한 열정들이 잊혀지지 않고 기억되도록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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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열망하는 이들의 가슴에 깊게 새겨진 노래

“요즘 젊은 사람들이 5․18을 기념하고 싶은데 ‘님을 위한 행진곡’을 잘 못 부르니까, 그 친구들이 따라 부를 수 있는 새로운 노래를 제작해야겠다는 것이 정부쪽 설명이라고 해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했지요. 그러면 젊은 친구들이 3․1절 기념 노래는 잘 따라 하느냐? 4․19 노래는 잘 부르느냐? 먼저 그런 노래부터 고치라고…. 제가 만든 곡이라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사람들 속에서 기념 노래로 알고 있는 곡을 굳이 바꾸려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 는 30년 세월동안 수많은 민주 시민들에 의해 불려온 민중가요 ‘님을 위한 행진곡’의 의미를 ‘기억’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역사적인 노래를 작곡했다는 자긍보다는 광주를 기억하는 데 역할을 했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마음이었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으로서 또 당시의 아픔을 같이 겪었고 느꼈던 사람으로서, 광주의 노력들, 민주주의를 향한 열정들, 이런 것들이 잊혀지지 않고 기억되도록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또 이 노래를 많은 사람들이 부름으로써 광주를 기억하고, 5․18을 기억하고, 당시 돌아가신 분들이 꿈꾸었던 민주주의를 기억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일조했다는 것이 위안입니다.” 

광주라는 도시에서 80년 5월을 겪은 노래꾼의 숙명

1978 년 전남대에 입학한 그는 대학 2학년 때 당시 전일가요제에서 ‘소나기’라는 곡으로 대상을 탔고, 이듬해에는 친구 2명과 혼성 트리오로 출전한 MBC 대학가요제에서 ‘영랑과 강진’이라는 노래로 은상을 받을 만큼 낭만적인 가수였다. 영랑에 꽂혀 서정적인 노래를 탐닉하던 그가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운동 가요이자 정치적인 노래 ‘님을 위한 행진곡’을 작곡한 것은 광주라는 도시에서 80년 5월을 겪은 노래꾼의 숙명과도 같았다.

“제 기억으로는 아마 81년일 겁니다. 5․18 1주기가 되는 해인데 그때 소설가 황석영 선생께서 광주에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황 선생이 ‘윤상원 열사와 박기순 선배의 영혼결혼식에 대해 가족들 사이에서 이야기가 나왔고, 1주기도 되었는데 우리도 그냥 지나갈 수 없지 않느냐. 뭔가 좀 해야 되지 않겠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여럿이 모이는 과정에서 ‘뮤지컬 같은 걸 만들어봅시다’라는 의견이 나왔고 아주 짧은 순간에 결정이 됐지요. 아마 81년 5월쯤 1박2일에 걸쳐 전광석화처럼 노래가 만들어졌습니다.”

서 슬 퍼렇던 군부독재시절, 노래를 만들고 녹음하는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광주항쟁의 마지막 순간까지 도청을 지키다 계엄군에 의해 사살된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열사와 그의 대학후배로 노동운동을 하다 79년 숨진 박기순 열사의 영혼결혼식이란 당시로선 ‘불법집회’에 다름없었다. 당국의 감시를 피해 그 집회의 노래극을 모의하고 작곡을 한다는 건 위험천만한 모험이었다.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박기순 열사 영혼결혼식 위해

“당시 운암동에 황석영 선생님의 집이 있었어요. 마땅히 갈 데도 없고, 녹음시설도 없었으니까, 황 선생님 집 2층에서 녹음을 했었죠. 나중에 녹음한 걸 들어보니 근처에 기찻길이 있었는데, 기차 지나가는 소리까지 녹음돼 있고, 개 짖는 소리도 들리더라고요. ‘넋풀이’ 또는 ‘혼 풀이’라는 제목으로 만들었는데, ‘님을 위한 행진곡’은 노래극의 제일 마지막에 나오는 합창곡이었습니다.”

밤 늦은 시간에 조심조심 만나, 행여 빛이라도 새어 나갈세라 커튼을 치고 조용조용 음악작업을 했지만 그게 용기 있는 행동이기보다는 너무도 당연하게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윤상원 열사나 박기순 열사는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해 목숨까지 바쳤는데 살아있는 우리가 무력하게 뭐하고 있는 것이냐’는 자책, ‘아무리 위험하다고 노래극 하나도 만들지 못해서야 되겠는가’ 하는 생각 때문에 두려움 없이 작업을 진행했다. 광주의 아픔에 몸부림치며 하룻밤을 꼬박 지새워 피워낸 것이 바로 ‘님을 위한 행진곡’이었다.

백 기완 선생의 시 ‘묏비나리’에서 소설가 황석영씨가 노랫말을 따오고 김씨가 곡을 붙인 ‘넋풀이’ 노래가 바로 온 국민의 가슴에 새겨진 ‘님을 위한 행진곡’인 것이다.

“당시 에는 전체 노래극의 대미를 장식할 합창곡이 나와야 했습니다. 노래극 구성이 사랑하는 남녀가 민주와 자유를 위해 투쟁하다 죽음을 맞아 어쩔 수 없이 헤어지게 됐는데, 그 둘을 다시 맺어준다는 영혼결혼식이었습니다. 그래서 두 영혼이 살아있는 후배들에게 ‘너희들 자꾸 기죽지 말고, 우리가 떠난다고 의기소침 하지 말고, 피하지 말고, 용기 잃지 말고 민주주의를 위해 계속 나가야 한다’며 힘을 주는 행진곡이 필요했지요. 노래극에서 불려진 15개의 노래 가운데 마지막에 모두가 함께 부르는 합창곡이 결국 ‘님을 위한 행진곡’이 되었지요. 그런데 노래의 가장 첫 리듬이 제 머릿속에 있었어요. 무엇 때문에 어디에 쓸려고 그 리듬을 담고 있었는지는 몰랐지만. 그 리듬을 가지고 하루 만에 작곡을 했습니다.”

김 씨는 ‘님을 위한 행진곡’이 1982년 2월 망월묘역에서 두 사람의 유해를 합장하고 올린 영혼결혼식에서 처음 불려진 것으로 기억했다. 그러나 그는 ‘님을 위한 행진곡’이 한국 민주주의의 ‘아리랑’ 혹은 5․18을 대표하는 ‘아리랑’ 같은 노래가 돼 민중 속에 널리 유포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결혼식에 축의금을 내는 느낌으로 만든 노래가 시대의 격랑을 타고 5․18을 대표하는 노래가 된 것이다.

“황석 영 선생의 말처럼 두 분의 영혼결혼식에서 축하하는 의미로 노래극을 한번 만들자는 단순한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한 달쯤 후에 군에 입대를 했습니다. 3~4개월 뒤 처음 외출을 나와 친구와 함께 서울 연세대 앞을 갔는데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곡조가 들리는 거예요. 학생들이 데모를 하고 있었구요. 그래서 친구에게 ‘저게 뭐냐’고 물었지요. 그랬더니 ‘야! 너 모르냐? 저게 지금 데모 현장에서 굉장히 뜨고 있는 곡이야’라고 하더군요. 참 이상하다 싶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노래가 바로 제가 작곡한 ‘님을 위한 행진곡’이었어요. 제 자신도 몰랐고 놀랬지요. 짧은 순간 우리나라의 의식 있는 학생들, 또 의식 있는 시민들 사이에서는 이미 다 퍼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테이프로 제작을 했는데, 그 테이프가 복사되고 또 복사되어 아마 백만 카피 이상은 복사된 것 같아요. 그렇게 해서 빠른 시간에 엄청나게 많이 불렸던 것 같습니다.”

▲ 1981년 5월 광주 운암동 황석영씨의 집에서 녹음했던 ‘님을 위한 행진곡’ 테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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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기념비적 민중가요, 가신 님들을 그리워하며 산자들의 비장한 각오를 다지던 의식의 노래 ‘님을 위한 행진곡’의 악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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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에는 청와대에서도 불렀다는 노래

그 는 세월이 흘러 바래진 당시의 녹음 테이프를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다. 당시의 노랫소리를 그대로 들어볼 수는 없지만 순수했던 열정과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광주의 기념물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님을 위한 행진곡’을 주제로 한 뮤지컬을 만들어 세계 무대에 올리는 꿈도 꾸고 있다. 그런 꿈을 위해 당시 만들었던 테이프나 악보도 간수하고 있다. 음반 사업을 하는 그는 최근 ‘님을 위한 행진곡’을 다시 작업하는 등 80년 5월을 기념하는 공연을 구체적으로 추진하는 중이다.

“‘님 을 위한 행진곡’을 포함해서 당시 작곡했던 노래가 100여 곡 됩니다. 그 중 12곡 정도를 추려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한풀이와 넋풀이 중심의 뮤지컬로 올릴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5․18 30주기를 맞는 날 공연을 하고 싶었는데 여러 여건이 맞지 않아서 좀 늦춰야 할 것 같아요. 음악작업은 다 되어 있습니다. 풀 오케스트라 반주로 가수가 노래를 불렀습니다. 음악은 예전과 다른 버전이지만 전체 흐름은 처음 우리가 그 밤에 황석영 선생님 집에서 노래를 만들던 그 느낌을 그대로 갖고 있지요.”

그 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한국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기념비적 민중가요의 작곡자가 되었고, 그 곡의 저작권자로 기록되었다. 이를 악물고 울먹이며 부르던 운동권의 노래, 가신 님들을 그리워하며 산자들의 비장한 각오를 다지던 의식의 노래 ‘님을 위한 행진곡.’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에는 청와대에서도 부른다는 이야기도 들렸던 노래. 5․18 기념식이 열리는 망월동 국립묘지에서는 어김없이 ‘님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진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든 ‘님을 위한 행진곡’이 들려올 때면 감동이 밀려온다고 했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노래를 들으며 가장 감동했던 순간은 따로 있었다.

“어느 해 5월, 망월묘역에서 고등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구석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광주를 생각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답고 감동스러웠습니다.”

불 멸의 노래 ‘님을 위한 행진곡’은 이미 아이들의 가슴 가슴에도 아로새겨져 민주주의의 강물을 따라 먼 훗날까지 오래오래 불려질 것 같다.

글 /사진=장현필 <영화감독·전라도닷컴 영상사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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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출력  2010-05-18 13:3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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