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흥길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Ⅰ. 들어가는 글



소설가 윤흥길(이하 작가라고 한다.)은 1942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다. 196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회색 면류관의 계절」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유년기에 겪은 6•25전쟁의 상처와 분단의 고통을 리얼리즘과 리얼리티를 혼합하여 소설로 써냈다. 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삶도 세밀하게 묘사했다.

 

장편소설 『완장』과 중편소설 「장마」와 더불어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이하 소설이라고 한다.)」는 작가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손꼽힌다. 이 소설 또한 중편으로써 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자본과 제도로부터 무참히 짓밟힌 채 힘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한 필치로 그려냈다. 그러한 점에서 조세희 소설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시리즈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본고에서는 소설을 중심으로 하여 작가의 작품세계를 면밀히 탐색하였다. Ⅱ-1에서는 소설의 주제를 Ⅱ-2에서는 작가의 다른 작품과 비교를 Ⅱ-3에서는 다른 작가의 작품과 비교를 꾀하고자 한다. 이러한 과정을 관통한 맺는 글에서는 소설 읽는 재미를 보다 깊게 짚어보고자 한다.



Ⅱ. 본론



소설은 대략 200자 원고지 250매 분량으로 쓰였다. 여러 사람이 등장하지만 주요 인물은 집주인 오 선생 부부와 세입자 권 씨다. 결혼한 이후 줄곧 셋방살이만 하던 오 선생 부부가 집을 마련하여 빈털터리인 권 씨에게 문간방을 내어주는 게 표면적인 사건이다.



Ⅱ-1. 주제



따뜻한 소설이다. 오 선생 부부가 권 씨 가족에게 쌀쌀하게 대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결국은 이웃을 돌보게 되는 감동적인 이야기다. 권 씨를 사찰(査察)해야 하는 이 순경조차도 권 씨를 사랑한다고 하며, 밀대노릇을 해야 하는 오 선생도 결국은 권 씨를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경찰관이 사찰 대상자를 사랑한다고 하는 발상은 특이한 것이다. 이러한 모티프는 사회적 제도가 사회적 약자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 하니 그래서는 안 된다는 의미의 역설로 보인다.

 

권 씨는 70년대 당시 대학을 졸업한 자로서 신개발이라는 제도에 항거하는 철거민의 주모자나 주동자는 아니다. 하지만 지식인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동자가 되고 만다. 철거민들의 강압에 의해서다. 이는 작가가 다른 소설에서 많이 다루고 있는 6•25전쟁의 상처와 흡사하다. 많은 선량한 주민들이 자의적이기보다는 타의에 의해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적군으로 갈리었고 나중에는 서로 죽이고 죽은 것과 비슷하다.

 

경찰과 철거민들이 치열하게 다투는 상황에서 참외를 실은 화물차가 난투극이 벌어지는 틈새로 끼어들었고 그러는 와중에 뒤집어 진다. 참외가 땅바닥으로 쏟아진다. 저항하던 철거민들은 투쟁을 멈추고 참외를 주워 먹는다.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그보다 더 어떻게 철거민들의 처절함을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러한 이미지를 끓어오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소설에서 권 씨에게 가장 냉장한 자는 산부인과 의사다. 권 씨의 아내가 극심한 산고로 인하여 초죽음이 되어도 의사는 수술을 하지 않는다. 수술비가 입금되지 않아서다. 막바지에 오 선생이 수술비를 대납하자 비로소 수술을 한다. 지금의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소설 마지막에 오 선생의 방에 칼을 든 강도가 침입한다. 강도는 오 선생이 수술비를 대납하여 아내가 무사히 출산을 치룬 걸 모르는 권 씨다. 하지만 위기에 맞닥뜨린 두 사람은 오히려 화기애애하다. 오 선생은 강도가 가져가도 되는 것들을 친절히 일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도는 금품들을 챙기지 않고 빈손으로 돌아 나가는데 무의식적으로 문간채로 간다. 그러자 오 선생이 대문으로 나가는 방향을 알려 준다. 강도는 나가며 ‘대학을 나왔다.’라고 한다. 범죄에 대해 범인 뿐 아니라 사회적 책임을 간과할 수 없다는 작가의 기준을 보여준 장면이다. 범죄도 사회가 보살피면 범죄가 아닐 수 있다는 뜻으로 비췬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시리즈에서는 자본가들과 철거민들이 서로 끝장보기를 하다가 마지막에는 파멸로 나아간다. 반면에 이 소설의 초점은 계층 간에 서로 화해하는 것으로 시종일관 맞추어져 있다.



Ⅱ-2. 작가의 다른 작품과 비교



장편소설 『완장』과 짧은 장편이라고 할 수 있는 「장마」에서도 이 소설과 닮은 모티프들이 나온다. 소설의 마지막에 강도가 되었던 권 씨는 아홉 켤레의 구두만을 남긴 채 사라진다. 아홉 켤레의 구두는 사라져버린 권 씨의 상징물이다. 소외받는 소시민으로써 실존적 가치를 구두로써 대변하였다.

 

『완장』에서도 그러한 역할을 종술의 완장이 대신한다. 여기에서도 결말에 종술은 술집 작부 부월이와 외동딸을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종술이 지키던 저수지에는 완장만 물결에 휩쓸려 떠다닌다. 완장은 가진 자들에 의해 밀려나거나 죽어 나자빠지는 천한 사람들의 공허한 자리를 메우고 있다.

 

「장마」에서도 기다리던 삼촌이 돌아 와야 할 시각에 삼촌은 오지 않고 그 대신 구렁이 한 마리가 집으로 찾아 든다. 삼촌의 존재가 상실되었음을 암시하는 거다. 더 나아가 구렁이는 민족혼이 자본주의라거나 공산주의라는 서구주의적 이데아에 의해 스러져버린 한민족적인 것을 상징하는 대체물이다. 구렁이는 에니미즘인 한민족의 토속 신앙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구렁이가 집밖으로 나가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설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장마」에서 구렁이가 집으로 들어온다는 것은 좌익과 우익으로 갈라졌던 민족혼이 다시 하나가 된다는 의미다. 이때도 좌익인 삼촌과 우익인 외삼촌은 이미 스러져버렸다.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구렁이만이 화합의 상징물이 되어 할머니와 외할머니가 화해하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이처럼 작가의 주요 작품들 속에서는 주인공이거나 주요 인물들이 어떤 인과성에 의해 사라져버리고 그들을 상징하는 대체물이 남아 소설을 갈무리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내고 있다. 이는 작가의 문학적 자아라고 봐도 무방하다.



Ⅱ-3. 다른 작가의 작품과 비교



이 소설을 읽다보면 문득 전영택의 「화수분」떠오른다. 구성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화수분」도 가진 자와 빈털터리인 자의 관계를 주제로 했다. 하지만 「화수분」에서는 이 소설과는 달리 두 계층이 화해하지 못한다.

 

이 소설에서는 오 선생과 권 씨가 화해를 이룬 다음 권 씨는 사라진다. 이때 화해의 매체는 권 씨의 셋 째 아이의 출산이다.「화수분」에서는 유산계층의 집주인과 행랑채(문간방)에 빌어 붙어사는 무산계급인 화수분과의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엄동설한에 남의 집 행랑채에 머물다 굶어 죽느니 고향을 찾아 나서던 화수분 내외는 길거리에서 얼어 죽는다. 그들의 품속에서 젖먹이 어린애만 살아남아 지나가던 나무장사에 의해 보살핌을 받는다.

 

쥐뿔도 없는 일가족이 두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행랑채(문간방)에 찾아드는 것은 두 소설이 거의 비슷하다. 그리고 「화수분」에서는 집주인이 화수분 가족을 돌보지 않지만 소설에서는 권 씨네 가족을 집주인이 마지못해 일지라도 돌본다. 이러한 사회적 문제의식이 담긴 모티프는 1920년대의 상황에서 1970년대의 상황으로 진보한 것이다. 또한 작가의 의식이 사회적 약자들을 감싸려는 것으로 비췬다. 이렇듯 두 작품은 닮기도 했지만 다르게 보이기도 하는데 결국은 구성이 닮은꼴이라고 보아도 된다.



Ⅲ. 맺는 글



윗글들에서처럼 이 소설에서는 부자와 가난한 자들의 분리가 아닌 일치를 담고 있다. 또 소외 받는 자들을 사회와 제도가 끌어안아야 한다는 면도 보여주었다. 1970년대에 쓰인 소설이지만 40년 정도가 흐른 2010년을 반영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이 소설은 고전화 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고전이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와 다르지 않고 미래에도 그와 같은 수밖에 없는 시대적 상황을 담고 있어야 한다.

 

이 소설에서는 2010년대 대한민국의 경제이념인 신자유주의를 비판하였다. 신자유주의란 성장위주의 경제 정책을 말한다. 보이지 않는 손을 주창한 애덤 스미스의 자유방임주의가 바로 신자유주의다. 이는 경제의 효용보다는 경제의 효율을 절대적으로 강조하는 정책이다. 경제발전의 이득이 국민들에게 평균적으로 고루 혜택이 가야 된다고 하는 것보다는 빈부의 차가 벌어지더라도 경제성장률만 높이면 된다는 정책이다. 그러는 과정에서 소설 속에 나오는 철거민들의 투쟁과 공권력의 제압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얼마 전에 서울의 용산 철거지역에서 이와 유사한 철거민들의 투쟁이 있었고 공권력이 제압을 하는 과정에서 대여섯 명의 철거민들이 비참하게 목숨을 잃었다. 이 또한 자본가들이 더 가지려고 하는 과정에서 소시민들을 수탈하려다가 생긴 참사다. 소설 속 권 씨처럼 소외받는 시민들도 여럿 생겼을 것이다. 여기까지만 하더라도 이 소설의 진가는 충분하게 읽어낸 샘이다. 이 소설은 단순한 이야기에 멈추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지금을 반영하고 미래를 지향하는 지침이다. 오늘을 투영하는 거울인 것이다.

 

끝으로 오타를 발견하였기에 재미삼아 적어본다. ‘우리 학교 담당인 하사 출신의 이 순경은 한바탕 너털웃음을 한 다음 곧장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1)라는 문장이 나온다. 여기에서 밑줄 그은 단어인 ‘하사’는 오타다. ‘학사’2)로 고쳐져야 한다는 것을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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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윤흥길, 조세희 저, 『조세희 윤흥길』,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2008, 창비, p.221

   2) 위의 책, 2008, 창비,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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